분석심리학적 무의식의 이해 – 서론
이 문 성(백산신경정신과)
융은 무의식을 알려지지 않은 정신신적인 것, 한편으로는 그것이 의식화되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적 내용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게 되는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덧붙여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정신양(精神樣) 체계(psychoid system)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 무의식이지만 무의식 속에 매우 복잡하고 의식과 유사한 과정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해리현상과 같은 정신병리와 꿈의 심리학 연구를 통하여 밝혀져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좋든 싫든 무의식적 내용의 상태가 의식적인 상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의식은 빛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의식과 유사한 것을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우주적 투사임이 명백한 사실이며, 그 속에는 신화소, 바로 원형이 반영되어 있다. 밝게 빛나는 것이 하나의 별이나 태양, 또는 눈(眼)으로 나타나면 그것은 곧잘 만다라의 형태를 가지며 따라서 자기(Self)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무의식에는 가치가 없거나 혐오스러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원형과 같은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융은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무의식적 내용을 의식으로 통합하는 것이 분석심리학의 주된 활동이 되었는데, 이는 주관적인 자아의식의 독재를 제거하고 그것에 집단 무의식의 내용을 대립시키는 일이며 그 결과 궁극적으로는 정신적 존재인 인간이 전체를 실현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내용을 어떻게 의식에 통합시킬 것인가? 무의식의 내용은 상징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상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늘 귀에 익은 용어나 이름, 또는 심지어 그림이지만 그것은 관습적인, 잘 알려진 의미뿐 아니라 아직 표현이 안 된 어떤 특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막연한 것, 미지의 것,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꿈이라는 형태로 무의식적이며 자연발생적으로 상징을 산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징을 감정적으로 체험하고 상징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통합시키게 된다. 꿈에 나타난 상징의 의미는 개인의 연상을 통해서 알아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연상으로는 이해되지 않거나 아예 개인적 연상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신화나 민담에 나타난 인류의 보편적인 연상을 통해서 그 상징을 이해해볼 수 있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에서는 신화나 민담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화나 민담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나타난 상징을 체험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한 남의 다리를 아무리 긁어도 내 다리가 시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의 신화, 나의 민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신화, 나의 민담은 나 자신의 무의식이 실현되어 나에게 나타난 나의 인생이다. 꿈이나 적극적 명상을 통해서 자신에게 나타난 상징들을 이해함으로서 다시 말해 나의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통합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융 자신의 표현을 빌어서 무의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이해를 소개하였다. 마지막으로 무의식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그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참고; 이 글은 한국분석심리학회 2005년 동계분석심리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