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회 참관기
김지연(융연구원 상임연구원, 좋은마음정신과의원)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C.G. Jung, His Myth in Our Time」에서 사람들이 융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차분함을 잃는다고 하였다. 융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열정적으로 추종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분석심리학회의 질문과 토론 시간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폰 프란츠는 이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반응들은 대개 신 혹은 악마, 즉 무의식을 향한 것이다. 무의식의 존재는 현대인들이 인식하지 않으려하는 바로 그것인데, 사람들은 그 이유가 두려움에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 못한 채 분석심리학에 대해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거부감을 나타낸다.’
분석심리학은 뭔가 멋있고 심오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대하는 사람도 있고, 분석심리학이라고 하면 너무 어렵고 실제적인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동계 분석심리학회에 참가한 날 이런 꿈을 꾸었다. ‘여러 사람들이 원탁에 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냐고 질문을 하였다. 몇몇 사람이 각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였다. 융학파인 어떤 남자 선생님은 “분석심리학만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나도 동감하였다.’ 분석가 선생님은 이 꿈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가장 융학파 분석가답지 않은 말이다. 환자마다 다른 치료방법이 필요할 수 있으며, 분석심리학만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오만이고 오류이다. 하지만 꿈에서 그렇게 나온 것은 어쩌면 분석심리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라고 하셨다. 이 꿈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정신과의사로서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관련서적을 읽고 임상에서 환자들을 대하면서 생각해본 결과 이 학문이 환자의 치료와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내 주변에는 분석심리학은 환자들보다는 일반인을 위한 것이며, 실제적이지 않고 소위 구름 잡는 얘기만 한다고 분석심리학에의 입문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융연구원에 들어오기도 전에 나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치우치지 말고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여 분석심리학은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내 자신도 무의식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개성화과정이나 자기실현을 이루지 못했으며, 꿈분석을 통해 환자를 치료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확신을 체험하고 진짜로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 년 동안 분석심리학을 접하면서 융이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고통 받는 환자의 치료에 있다는 것, 꿈을 보는 것이나 신화나 민담을 연구하는 것도 단지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에 대해 체계적으로 짚어주었던 2005년 춘계학술대회와 분석심리학에서의 꿈의 해석과 정신치료과정에 대해 실제적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동계학술대회는 의미가 깊었다. 이문성 선생님과 이유경 선생님은 신화와 민담에 나타난 정신현상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무의식은 살아서 움직이고 의식생활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역설해주셨다. 그러한 무의식의 의미와 영향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강의를 듣는다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학적인 얘기를 한다고 비하할 수 있을 것이다. 박신 선생님은 꿈의 해석에 대해 기초적인 이론부터 꼼꼼하게 개념을 정리해주셨고, 이도희 선생님은 증례 중심으로 실제 임상에서 분석가가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보여주셨다. 아직 치료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사례도 있어서 향후 어떻게 꿈이 발전되어 나갈지, 분석을 통해 환자가 얼마나 자신의 무의식을 깨닫고 통합해나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의 목표는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 치료종결의 기준은 무엇인지, 모든 사람이 개성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지만, 경험과 고민이 좀 더 필요한 질문이라 생각되어 다음을 위해 남겨 두었다.
2006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