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다녀와서
박 신(백산정신건강의학과)
네팔에서 2주가량을 보내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가 채 못 된 때였다. 집에 돌아갈 교통편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리나케 버스와 택시를 타고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짐을 내려놓는데 뭔가 분명치는 않은데 낯선 느낌이다. 처음 느껴보는 이 느낌이 어떤 것인지 처음에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든 샤워를 하고 짐을 푸는데 여전히 낯설고 좀 적응이 안 된다. 혹은 적응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 아! 정말로 낯선 거구나. 2주간의 여행에 지친 몸은 집에 돌아오면 편안할 거란 생각에 늘 그랬듯이 그러리라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낯선 느낌이 들어서 예상과 다른 반응에 뭔가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느낌은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여기는 내 집이고 2주간의 여행 후에 돌아온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가 낯설다.”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과는 다르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 머물다 온 것처럼 오히려 내 집이 낯설다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그리고는 2주가량의 독한 감기가 이어졌다. 생각은커녕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고 집에 와서는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했고, 그것도 기침 때문에 편안하지 못한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기억나는 한에서는 이렇게 많이 아파본 적이 최근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몸이 나를 가지고 있구나! 감기의 경과로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이 되고 나는 다시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나로 돌아왔다. 이렇게 떠나기 전의 원고 약속과 독촉은 다시 내 현실이 되었다. 2주간의 적응기간이 지난 나는 이제는 낯선 느낌 없이 예전처럼 모든 것이 잘 작동되고 있다.
네팔에 도착해 트레킹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꿈을 꾸었다. 어딘가 외국의 낯선 거리를 내가 걷고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가다가 어떤 가게를 그냥 둘러보러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이발 의자가 있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 미용사가 있었다. 그 여자는 외국 사람이었는데 마치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여자를 섞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아 미용실이구나 생각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그 여자가 나를 의자에 앉혔다. 나는 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어리버리 하는 사이에 내게 이발 가운을 두르더니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나는 어, 어, 어 하다가는 꿈에서 깼다. 사실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늘 가던 이발소에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트레킹 동안에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사정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쉽게 감거나 안 감아도 지내기 쉽게 없는 머리나마 짧게 자르고 갔다. 그것은 동시에 어려운 환경으로 가는 나의 각오를 다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꿈에서는 또 그것도 미장원의 낯선 외국 여자가 머리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깎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몸이다!”라고 되뇌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요즘의 잘 나가는 그런 소위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 예전부터 내가 흔히 보던 생활력 강한 동네의 미장원아줌마 같은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남편이 시원치 않거나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가진 기술을 이용해 돈을 벌고 아이들을 키워낸 억척이 아줌마들로 경험해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하루 일과는 간단했다. 아침 기상- 대개는 6시쯤 일어나야 헸다. 물론 이미 그 전에 깼지만 –후 식사를 하고 8시경에 걷기 시작해서 두 시간쯤 지나 잠시 휴식하고 또 걷고 점심식사 후 다시 걷고 잠시 휴식 후 다시 걷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잠을 자고 다시 다음날 일과가 시작되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다른 분들은 담소를 나누고 하는데 나는 이미 피곤해 졸리기 시작해 8시가 좀 넘으면 이미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시간은 정확하지가 않고 또 의미도 없었다. 왜냐하면 시계가 없었기도 한데다가 시간을 안다고 한들 아침식사 시간과 출발시간 이외에는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추운데다가 난방은 없고 전기는 전구 하나를 켤 수 있거나 그나마 시간제한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침낭 속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걱정과 생각들은 내려놓기로 했으니 아무 것도 해야 할 것이 없었다. 먹고 틈나는 대로 따뜻한 물을 마시고(고산증 예방을 위해) 배설하고 최소한의 개인위생(면도생략) 이외에는 핸드폰도 이메일도 환자걱정 집안걱정도 다 소용 없는 일. 오직 몸을 위한 것 이외에는 없었다. 가면서 책도, 메모할 수 있는 노트도 가져갔지만 짐 무게만 늘린 셈이 되었다.
기특하게도 생각보다 잘 적응하며 작동하던 내 몸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에서 자던 날 밤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를 내게 일깨웠다. 그날도 많은 시간을 걷고 눈이 내린 길을 걷느라 너무 피곤해 일찍 잠이 들었는데 자다가 무슨 물 같은 것이 코에서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코피가 나나 생각하며 깨서 손을 대보니 콧물이었다. 그래서 코를 풀고 다시 누웠는데 잠이 오지를 않아 뒤척이는데 점점 숨이 차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숨이 안 쉬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 생각해보니 “고산증이구나, 약을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예방 목적으로 실데나필을 먹고 있었고 증상이 없었는데 그날 고도를 많이 높인데다 감기가 걸리면서 급속히 나타난 것 같았다. 약을 추가로 더 먹으니 숨 쉬기가 나은 것 보면 고산증세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거의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다음날 ABC까지 오르는데 나이가 들어서 숨이 차다고들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서 다들 커피를 한잔씩 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그 커피조차 맛을 볼 여유를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힘든 것들은 그날 다시 내려오면서 언제 그랬냐 싶게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그날 밤은 정말로 달게 잘 잤다. 적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자연의 법칙에 거슬러 빠른 속도로 올라간 내게 자연은 신체 반응을 통해 의사소통을 시도해 온 것이었다. 생각이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이런 방식도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가기 전에 했던 걱정 하나는 둘째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평소에 운동을 하던 아이가 아니라서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미리 산에도 좀 데려가고 운동도 하라고 채근을 하고 했지만 혹시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같이 간 일행은 70대 한 분, 60대 네 분, 50대 세 명, 40대 한 명, 20대 두 명이었다. 비교적 세대가 골고루 있는 편이었는데 20대 두 명은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평소 운동이나 등산을 하지 않았던 학생들이었다. 결과는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등산을 해 본 분들은 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내려오는 길도 계속 내리막길만은 아니기에 고산증의 어려움은 없지만 체력이 많이 고갈된 상태에서 다시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20대 젊은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점점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객관적인 혹은 내 주관적인 평가는 이번 트레킹은 등산의 경험과 평소 운동 경력과 관계없이 나이가 적을수록 더 생생하고 잘 견뎌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역시 몸은 몸이구나,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젊은 몸은 오래 사용한 몸보다 싱싱하구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보았는데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낯선 느낌과 2주간의 어쩔 수 없는 휴식은 내게 다시 이번 트레킹에서 경험한 것들을 각인시켰다. 그것도 물론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더 예전의 방식으로, 자연의 방식으로, 무의식이 의식에게 다가오는 방식으로.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익숙하게 지내고 있지만 원래 있었던 그런 방식의 삶이 남아 있는 시간 동안에 실제 삶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내게 더 편안하고 익숙한 방식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