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사 거두어들이기”
한 상 익(인천성모병원, 융학파분석가)
S.I. Han, Jungian Analyst
사실은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왠지 어색하고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융학파 분석가라고 자 격을얻기는했지만별반시간이지난것도아니고그후굳이 내자신의삶도그리달라진것 도 없는데 ‘분석가’로서 에세이를 써보라고 하니 없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서 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면서 머릿속에서 거의 끝까지 구성되어야 움직 이던 예전 버릇에서 조금 바뀐 것이 있는 것도 같다. 정리 되었건 아니 건 우선 떠오르는 생각들 을 구체적으로 적어나가 보려고 하는 변화가 생긴 것이 굳이 표현하자면 그동안 조금 체험한 무 의식과 소통하려는 작은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분석심리학 수련과정에서 진지한 관조의 태도로 무의식에 관심을 돌리고 의식의 자아와 무의 식의 자기를 합일해 나가는 개성화 과정은 주로 꿈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분석가 수 련 과정에서도 교육 분석이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꿈속에 나오는 개인적, 집단적 무의 식에 있는 수많은 콤플렉스들을 의식화하거나 관조의 태도로 체험적 인식을 하면서 조금씩 무의 식과 전체가 되어나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의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분석심리 학적으로 투사는 병리적인 의미만을 가진 현상이 아니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외부에 돌리는 모든 인간에게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보통은 사람들이 자신이 투사하는 것을 평상시 잘 알지 못하고 많은 인간관계에서 갈등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산다. 교육 분석을 받으면서 자 신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수많은 상(象)으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투사를 거두어들이게 되면서 내적환경인 무의식과 외적 환경인 세상살이 모두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갈등이 줄어들게 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분석과정이 끝나고 분석가가 되고 나면 자신의 꿈을 보는 기회가 적어지면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꾸준히 관찰하는 기 회가 오히려 적어지는 것 같다. 물론 분석훈련을 받은 것을 토대로 자신의 꿈을 보아가는 것도 가 능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자신의 꿈을 보는 것이 교육과정에서처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하더라고 쉽게 해석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교육과정과 같은 정도는 아니더 라고 분석가 모임에서 분석을 할 수 있다 던지 다른 분석가의 분석을 받아 보는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보는 방법으로 적극적 명상의 방법도 있지만 그 또한 혼자서 그 과정을 잘 수행하고 의식화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분석가 라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혼자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보아가는 방법으로 비교적 가능한 방법은 역시 평상시 인간관계나 일들 속에서 좋건 나쁘건, 크고 작은 자신의 감정의 변화, 단어연상 검사에서 보이는 콤플렉스 증후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을 잘 살펴가면서 부단히 내면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이 있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적당한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무의식의 일면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성찰의 기준은 물론 외적인 윤리·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고 잘못 을 뉘우친다는 의미에서 반성문(反省文)을 쓰듯이 반성한다는 의미라기보다, 자신의 내면의 요구, 진정한 목소리를 들어본다는 뜻에서 자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한 언행의 원래의 의도가 정말 그 언행을 할 때 어떤 의미였는지? 의식에 처음 떠오른 의미였는지, 아니면 그 반대의 뜻, 또는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반대로, 또는 뒤집어보아 성찰해 본 다는 뜻에서 그렇다.
최근 2-3년 사이에 새로 매우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학교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 런 저런 갈등을 겪고 감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꿈 분석 과정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기 도 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쌍방 간에 서로 입장이 있고 태도나 관점이 달라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그 런 점에서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런 객관단계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그 과정 중 에 나타나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살펴보는 일 일 것 같다. 그 콤플렉스에는 꿈 분석과정에 자주 등 장한 콤플렉스로 지속적으로 제대로 의식화해야 할 콤플렉스도 있고 한두 번 등장하였지만 원형 적인 수준의 콤플렉스여서 부지불식간에 큰 영향을 받아 그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줄도 자각 하기 어려워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콤플렉스도 있었던 것 같다.
피상적인 수준으로라도 굳이 이야기기해 보자면 아마도 내향, 직관, 사고형인 나의 무의식에는 나의 유형에 반대되는 열등한 유형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콤플렉스가 늘 자리하고 있다가 나의 주의를 끌만한 재주를 보여주는 것이 있거나 내가 부족한 재능을 가진 상대를 만나면 쉽게 영향 을 받고 평소와 달리 너무 쉽게 가까이 하거나 반대로 정도 이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있었 던 것 같다. 심리유형으로 설명을 하지 않더라고 그 외의 많은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최근의 일을 예로 들면 서로 스타일이 다른 트릭스터 같은 인물들을 비슷한 시기에 두 사 람이나 만나 한동안 나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려다가 점차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 하고 내가 뜻한 바와 달리 일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겪으면서 그동안 내가 많은 것을 투사하 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물론 상당한 고통을 겪으면서 투사를 거두어들이긴 했 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평소 살아오면서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과 만나 경험이 적었고 나의 내면 에는 그런 분화되지 않았던 콤플렉스가 의식에 떠오르기를 기다리다가 비교적 늦게 우연한 기회 에 투사가 되어 일들이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트릭스터 콤플렉스는 과거 꿈분석을 받 을 때 한 두 번 나온 적이 있던 콤플렉스였지만 나와는 큰 상관없는 것 같아 별로 중요하게 여기 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지냈던 결과인 것도 같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십 여 년 전 볼링겐에 있 는 융의 성탑을 방문했을 때 융이 돌에 조각한 많은 상들 중에 트릭스터 조각이 있었고 그 트릭 스터 원형이 매우 중요한 원형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아무튼 평생 꿈 분석을 받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 명상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꿈에 나오는 콤플렉스들처럼 깊이 있게 제대로 해석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최대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일들 속에서 겪는 감정과 몸의 반응들을 살피면서 그때 그때 자신의 내면을 깊 이 있게 관조하고 무의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늘 정중동(正中動), 중(Mitte)으로 향하는 역동적인 개성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